제202506호 신부님 편지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어농성지 후원회원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지난 성모성월도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행복하셨는지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의 마음에 젖어드는 예수성심성월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사제관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상추, 쑥갓,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등의 생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애플수박도 심었는데 손톱만한 수박이 열매맺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비로움을 넘어 경이로운 마음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지만 놀라운 텃밭 앞에 5년 전 쫌 헛개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충청도 시골에 살고 계신 이모님이 주신 헛개나무의 키는 저와 비슷했습니다. 저는 나무를 심고 가뭄이 찾아오면 물도 주면서 헛개열매 수확의 행복을 꿈꿔왔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도 나무는 자라나지만 헛개열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나도 열매맺지 않는 나무를 한참 바라보다 베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복음에 등장하는 열매맺지 않는 나무의 비유 상황과 유사했습니다. “그래도 올 해만 더 기다려보자. 든든하게 잘 자라서 분명히 훌륭한 헛개열매를 주리라”라고 안겨줄까?” 그 해에도 열매는 깜깜무소식이었습니다. 점점 열매를 향한 기대보다 실망이 커졌습니다. 더욱이 이 헛개나무가 자라면서 햇빛을 막아 텃밭의 식물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작년에는 햇빛을 못 받은 애플수박들이 시들어 죽었고 손바닥만한 텃밭의 농사를 망쳤습니다. 수 십번의 갈등 후, 지금 헛개나무는 4미터가 넘는 크기로 자라났고 드디어 올 해에 처음으로 헛개열매를 맺었습니다.(짝짝짝) 참고 기다린 시간의 보상을 나무가 이제부터 돌려주겠지요.

거룩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를 늘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고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올 해에 열매를 맺지 않아도 당장 베어버리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꺼트리지 않으시고 좋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돌봐주시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6월 예수성심성월에 예수님의 마음 안에 여러분 모두 머물고 느끼고 행복을 맛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2018년 6월 예수성심성월에 어농성지에 부임하였습니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새로운 삶의 장소로 저를 보내십니다. 처음 성지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둠과 고요와 성지의 삶에 적응하는데 6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어농성지의 모든 것들이 익숙합니다.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사랑으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른 낯선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말씀을 전하며 열매 맺기 위해 달려가는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농성지에서의 삶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안녕히 계세요!

– 글 | 어농지기 박상호 바실리오 신부 올림